나이가 60-70--그리고 햇수가 갈수록 보이지않고 불투명하고 불안한미래
보다는 지나간 과거의 추억을되살려 생각하고 어리고 젊었을때의 기쁨.노여움.
슬픔.즐거움을 혼자간직하고 회상하기보다는 누구인가에게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래도 같은또래 비슷한세대에게는 같은감정과 동질감이있어 서로 호응하고
그래! 그래! 그때는 그랬지! 나때는 그랬지! 라고 좋은반응이온다
요즘 말로 영혼이 살아잇는 리액션을 받는다.
그런데 그세대는 그세대의 자기들의 애기다.
그나마 베이비붐시대라고 부르는 X세대는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듣는체는한다.그러나 그후의세대인 M이니 Z세대에개는 전혀 공감이안가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꼰대들의 얘기로들린단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때는 -나때는-하다보니 이제는 이탈리아의 우유커피
“라떼”로 희화화 되었다. 언젠가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녀석이 어디서
그런말을 들었는지 할아버지! 꼰대가 무슨말인가요? 물었다 -왜-묻지?
나도 피상적으로 잔소리많이하는 노인네라는 생각뿐이라 그용어의 어원 및
유래를 몰라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모르면 인터넷 검색이 최고다-안쪽팔리고
여러 가지 설이있다 첫 번째 한국유래설은 주름이많은 노인을 뻔데기주름에 빗대어 번데기의 전라도사투리인 “꼰데기”에서 나왔다는설.
두 번째설은 고상하게도 프랑스어로 백작인 conte 에서나왔다는데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에게 백작 지위를주고 ‘콩테“ 라고부르다 꼰대로변한설.
나는 무슨대답을 했을까-물론 고상하게 프랑스의 높은 귀족이라고 말했다.
이제 진짜 라뗴의 꼰데 얘기를 해보려고한다.
우리집에서는 가끔 언쟁을 벌이는 신경전이있다.
그이유는 내가 버려진 전자제품 및 쓸만한 물건을 집에가져와서 고쳐도보고
아니면 나중에 쓸데가있다고 창고에 보관하는 일 때문이다.
나는 쓸만하다고 주워오고 집사람은 폐기물 딱지를붙여 버리는일이 반복된다.
나도 지금같이 하루가 다르게 신제품이 나오고 쓰던제품을 버리는 소비풍요의
전성시대에 무슨짓인가 하고 스스로 자책도 해보지만 아무래도 물자 부족의
시대를 몸으로체험한 어렷을때의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그러면 그때 라떼는 어떻게 살앗을까.
우선 그 얘기를 하려면 태어나서 자랐던 옛날의 고향얘기를 안할수가없다.
내고향은 지금은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수원에서 3시간이면 갈 수 있고
지방특산물인 사과.한우.오미자가 유명한 장수라는곳이다.
그때는 무주.진안.장수를 합쳐서 무.진.장 지구라고불럿고 시골의 대명사였다.
어떤면에서는 군부대가 있던 강원도 산골보다도 더늦게 발전했다.
전기도 안들어와 내가 전주에서 공부하던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방학때도 집에가면 그때도 호롱뷸를 켜고 살았다
.
호롱불 하니까 아주재미있는 얘기가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때 우리동네에서부산에 친척이있어 대학교에 진학한 대학생분이 있었다 그때는 면을 통틀어야
대학생이 한둘이였다 그분이 부산에서 방학때 집에오면서 깜깜한 밤길을
다니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렵게 모은돈으로 손전등(후래쉬)을 사와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갔다. 그어머님은 아깝다고 쓰지않고있다가
어느날 생각이나서 손전등을 켰는데 끄는방법을 잊어버려 아무리 끄려고해도꺼지지않아 입으로불기도하고 물을뿌려도 꺼지지않아 결국은 물속에 담궈서 밧데리가 방전이 다되어 꺼졋다는 얘기를 들은적이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얘기다
그때 라때는 라디오도 엄청비싸고 귀했다 라디오가 있기전에 시골에서는
라디오는 비싸서 살 엄두도못내고 면사무소가 있는 면사무소 전파상에서
유선으로 선을깔고 그선에 스피카(앰프)를 각집마다 달아놓아 전파상에서보내는 방송을 듣는시대가 있엇다 면사무소관내 몇백세대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채널의 방송을 듣는다는 것을 요즘세대는 어떻게 이해를할까.
그 스피카 수신료는 시골에서는 정기적으로 낼수가 없어서 가을농사를지면
곡식이나 농산물로 수신료를 대신하기도했다.
참!지금생각하면 미친짓같지만 그때는 그만큼 과학기술이 발달되지못했다.
우리동네에 유일하게 잘사는집에 라디오 한대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잃어버려서 그 라디오를 찾는다고 무당까지 부른적도있었다
이제는 우리집 그리고 내가 직접 체험한 라떼의 일이다
그때는 모든 물자가 귀했다. 하다못해 금속으로된 철사줄하나
그리고 그릇.용기.병 하나도 구하기가 쉽지않앗다
*철사줄얘기-초등학교시절 나는 겨울에 썰매를 만들어 타고싶었다
그때는 썰매를 시골말로 “시게토 (스케이트)라고불렀는데 판자로 만든
발판밑에 철사줄을 박아서 스케이트날처럼써야 되는데 집안에서
아무리찾아도 철사줄하나 찾을수가 없엇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몇십리떨어진곳에서 물레방앗간을 하는 고모님집에가서
철사줄를 얻어와 시게토(설매)를 만든 추억이있다.
*머큐룸(아까징끼).옥도정기 이야기- 아까(赤)징끼는 일본말로 붉은색의 소독약을말하는데 그때 라떼는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무조건 삐거나 상처를 입으면 빨간약을 발랐다 그러나 지금은 흔하고 흔한
그약도 그시절에는 흔하지가 않았다. 그나마 나의부친이 면사무소에
근무를해서 가정상비약으로 비치하고있었는데. 동네사람들이 다치거나
상처가나면 우리집으로 약을 얻으로오는데 마땅한 병이나 용기가없어서
밥그릇이나 종기그릇을 가져와서 덜어가기도했다
지금까지 전개한 나의이야기를 듣고 요즘 신세대들은 어떤반응을보일까
옛날 그때 곡식이 없어 많이 배고팠다고하면 그럼 라면끓어먹지요 하는
세대는 전혀공감이 안가는 호랑이 담배피우던시대 .귀신 씨나락 까먹는소리다.
어쨌든 결론은 그때.라떼는ㅡ그런일도 있어단다.
아.나.바.다 -아.나.바.다- 무슨 주문인가-아껴쓰고.나눠쓰고.바꿔쓰고.다시쓰자
그런데 이야기는 라떼의 희.로.애.락중에 어디에속하고 해당되는것일까?
이글을 쓰고있는 나도 감이 잘 안잡힌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직도 라떼의 희.로.애.락 에대한 할말이 많이 남아았다.
블로그
라떼의 희로애락(喜怒哀樂)
2작성자 : 정진규 등록일시 : 1년 전2024-09-21 01:04: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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