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일본인마을과 아유타야 용병들: 조선보다 빨랐던 일본의 동남아 진출

작성자 :     등록일시 : 2025년 02월 12일 (수)


베트남 호이안은 지금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지만, 옛날부터 국제 무역항으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들이 이미 16~17세기 무렵 이 호이안까지 와서 무역을 하고, 아예 일본인 거주지인 "일본인마을"까지 형성했다는 점입니다.

호이안에는 지금도 일본교(내원교)라고 불리는 다리가 남아 있는데, 이것 역시 당시 일본인 공동체의 흔적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즉, 일본은 이미 그 시절 동남아 해상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입니다.
이곳에도 일본인 거주지가 있었고, 일부 일본 무사나 로닌들은 현지에서 용병이나 경호병처럼 복무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야마다 나가마사 같은 인물은 아유타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왜 일본은 이렇게 멀리까지 갔을까요?
전국시대와 에도 초기의 일본은 상인, 무사, 로닌들이 해외로 움직일 여지가 있었고, 주인선 무역 같은 제도를 통해 동남아와 활발히 연결되었습니다.
전쟁과 혼란 속에서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무역 기회를 잡으려는 상인들도 많았습니다.

반면 조선은 달랐습니다.
조선도 베트남 같은 지역의 존재는 알았겠지만,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동남아에 거주지를 만들거나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왜구 문제, 해양 통제, 대외 질서 중심의 외교 구조 등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은 바다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호이안에 마을을 만들고, 아유타야에서 용병으로까지 활약할 때 조선은 그런 식의 해외 진출 사례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례만 봐도 일본은 근대 이전부터 해외 네트워크 감각이 엄청났던 나라였습니다.
베트남 호이안에 일본인 마을을 만들고, 태국 아유타야에서는 용병으로까지 활약했으니 조선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조선이 바다 건너 세상에 거의 손도 못 댈 때 일본은 이미 동남아에 직접 들어가 무역하고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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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 : 호이안, 일본인마을, 아유타야, 일본, 동남아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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